도전! 미칠왕/대회 참가기

애팔래치아 산맥을 달리다! Helenback 트레일레이스 -마라톤

미칠왕 2023. 4. 25. 00:10

4월 22일, 나는 애틀랜타 북동쪽으로 1시간여 거리에 떨어진 Helen에서 산악마라톤 대회에 참여했다. 미국에 온 지도 어느덧 3개월 차, 생각보다 사람의 적응력은 빠른 것 같다. 외국인과 말하기도 두려웠던 나의 모습은 이제 온데간데없고, 그들의 출신지와 관심사를 공유하기에 이르렀다! 아틀랜타 런 클럽(ARC)에서 주당 3회 달리기를 하면서 일면식을 트니 어느새 지속적으로 연락하는 친구들이 생겨났다. 물론 한국어만큼 유창하게 이야기할 정도는 아니지만, 사람을 사귐에 있어 언어의 장벽은 그다지 중요한 것이 아닌 것처럼 보인다.

아무튼, 나는 ARC 사람들과 함께 달리기를 하면서, Beltline 단거리 5K 레이스에도 참여했다. 그러나 전날 하체운동을 해서인지 마지막 2km는 매우 고통스러웠다. 나는 그때 5K 개인 최고기록인 20분 37초를 달성했다. 확실히 혼자 달릴 때보다는 사람들과 함께 하는 것이 시너지효과를 받아 더 좋은 기록을 낼 수 있는 것 같다. 일전에 잠실 올림픽 보조경기장에서 측정한 22분 13초보다 더 단축된 거리였다.

beltline 5K



나는 이 외에도 크로스핏에 도전하기로 했다. 크로스핏은 미국에서 탄생한 운동으로, 컨디셔닝 운동의 가히 끝판왕이라 불린다고 한다. 유산소 운동과 무산소 운동을 넘나다는 이 운동의 매력에 흠뻑 빠졌다. 마무리운동과 워밍업을 제외한 본운동시간은 길어야 20분을 넘기지 않았지만, 운동의 효과는 매우 탁월했다. 미국이라는 땅에서 내가 해 보고 싶은 것들을 하나하나 실행해 나가는 것은 매우 재미있다.

WOD, Workout of Day의 줄임말. 고강도로 짧은 시간에 하는 운동은 전반적인 신체 컨디셔닝에 탁월한 것 같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나는 또 다른 도전을 하기로 했다. 내가 사는 이곳 조지아주 애틀랜타 남쪽은 산이 거의 없어, 첫 한 달간은 적응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나는 우연히 한 사이트에서, 조지아에서 산악마라톤을 개최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Helen이라는 동네에서 시작하여, 애팔래치아 산맥 초입에 위치한 Tray Mountain의 능선을 찍고 다시 출발점으로 내려오는, 44km의 긴 코스였다. 나는 한국에서 작년에 지리산 화대종주 산악마라톤에 참여한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바로 신청했다. 애팔래치안 산맥은 어떤 풍경일까? 곰도 살고 너무 넓어 길을 잃지는 않을까? 하는 불안감이 있기는 했지만, 그래도 신청해 보기로 했다.

대회 일주일을 남기고, 나는 훈련에 돌입했다. 2월 초에 마지막으로 설악산에 다녀와서, 등산, 정확히 말해 트레일런은 매우 오랜만이었기에 적응이 필요했다. 그래서 Tray mountain 쪽으로 주말에 사전답사를 가기로 했다. 내가 거주하고 있는 아틀랜타 남부 Mcdonough에서 Helen까지는 2시간, Tray mountain 입구까지는 30분이 더 소요되어, 총 2시간 30분이 소요되었다. 4월 15일은 14일 Beltline 5K 단기 레이스 이후 채 근육통이 가시기 전이었다. 그래도 사전답사이니 마음을 가볍게 먹고 출발했다.

Tray mountain 초입에서.



Helen은 미국 속 독일 마을이라고 불릴 정도로 도시 정비가 잘 되어 있었다. 나중에 10월 옥토버페스트도 열린다는데, ARC에서 만난 독일 친구인 Lars와  한번 그때 방문하기로 했다. 아무튼, 나는 점심으로 서브웨이를 먹고 기름을 넣은 뒤 등산로 입구로 향할 찰나에 예기치 못한 변수가 생겼다. 차량 엔진 경고등이 뜬 것이다. 차량 정비에 문외한이었던 나는 주차장에서 잠시 고민을 하다가 근처의 일요일에도 문을 여는 차량 정비소로 갔다. 정비소에는 영업을 곧 종료하려 하시는 사장님이 계셨다. 내 차를 보시고는 정비 패드를 차량에 연결하시더니 큰 문제가 아니라고 하셨고, 어느샌가 그 경고등이 사라져 있었다. 나는 고마워서 얼마를 내야 할지 여쭤봤지만 그냥 좋은 하루 되라고만 하시며 미소를 지으셨다. 예기치 못한 상황에서 예기치 못한 인심! 어르신께 너무 감사했다!

아무튼, 15일 1시가 되어서야 나는 Tray mountain 정상을 향했다. 혼자 산을 달리고 있노라니 살짝 무섭기는 했지만, 이윽고 내 호흡과 심장박동에 집중할 수 있었기에 다른 생각은 들지 않았다. 풍경은 내 고향인 태백의 산과 비슷했다. 다른 점이 있다면 아메리카흑곰이 산다는 것과 크고 우람한 원시림이 형성되어 있다는 정도였다. 오르막길은 매우 힘들었다. Tray Gap이라고 하여 우리나라 함백산의 만항재처럼 차량이 들어서 캠핑을 즐길 수 있는 능선이 보였다. 달려오는 나의 모습을 보고 캠퍼들이 놀라 Helen에서 여기까지 뛰어 왔냐고 나에게 물어봤다. 그렇다고 답변한 뒤, 나는 어디로 가면 정상이 나오는지 물어봤다. 오른쪽 길로 가면 된다는 말에 나는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정상을 올라갔다.

정상에서 한컷.


정상은 우리나라의 여느 산들과는 달리 탁 트인 정상과 비석 등이 있지 않고, 단지 철 말뚝?으로 정상임을 표시하는 것만 보였다. 태백의 연화산 정상과 비슷한 풍경이었다. 비가 조금씩 내려서 나는 하산로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나중에 다시 Tray gap에서 그들을 만났을 때, 우리가 바비큐 파티를 한다며 시간이 된다면 같이 먹지 않겠느냐고 물어봤다. 나는 정말로 먹고 싶었지만, 시간상 그건 어렵다는 의사를 전달하고 바로 하산을 했다. 지금 생각하면 고기 한 점 정도 먹을 시간은 있었던 것 같다. 운때문인지, 여기에서는 인심 좋은 사람들만 만났다!

내리막길은 자갈이 많았기 때문에, 달리기에 각별히 신경을 써야 했다. 비교적 큰 돌들을 밟는 것보다 자갈이 발의 피로도가 상당했다. 하산하니 3시간 여가 소요되었고, 거리는 26km였다. 당초 지리산 화대종주 코스를 48km에서 13시간에 거쳐 완주했던 것을 생각하여, 이번 대회도 10시간 정도 걸리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Tray mountain은 생각보다 고도차가 심하지 않았기 때문에 훨씬 덜 걸릴 것으로 예상했다.

첫 미국 호텔! 시설 깔끔하고 좋았다!


22일 대회날 전에, 나는 21일 퇴근과 동시에 회사에서 출발하여 근처에서 숙박을 했다. 보안 보증금으로 50불을 내야 하는 것이 신기했다. 잠을 빨리 청하고, 대회 당일날 오전 5시에 기상하여 전날 먹다 남은 판다 익스프레스의 볶음밥과 닭구이를 먹었다. 대회 출발 라인에는 아직 새벽녘의 안개가 자욱하게 끼어 있었다. 다들 상기된 얼굴로 대회 주최자의 사전 공지를 주의 깊게 들었다. 주최자는 GUTS라 하여 조지아 울트라마라톤, 트레일러닝 협회에 소속되어 있는 사람이었고, 대회 주최도 GUTS가 했다. 나는 번호표와 기념 티셔츠를 받았다. 주최자는 이제 곰들이 겨울잠에서 깨어 먹이를 구할 시기이기 때문에, 곰을 마주쳤을 때의 행동요령에 대하여 간략히 알려주셨다. 절대 뒤를 돌아보고 도망치지 말고, 낼 수 있는 가장 큰 소리를 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나는 곰을 마주친 경험이 없지만, 대회 직전의 이런 공지는 매우 유익했다. 아무튼, 7시 정각에 나는 출발했다!

시작 직전 찍은 사진. 긴장감이 느껴진다.


초반 Ruby 폭포까지의 코스는 비교적 완만했다. 내 능력을 과대평가하는 것은 아니지만 나름 잘 달린다고 자부했다. 그러나 내 앞에는 15명 정도가 있었고, 개중에는 체격이 나보다 훨씬 작은 여성분도 계셨다. 그분들의 폐활량과 다리 근력에 경의를 표했다. 나는 뱁새가 황새 따라가다 다리 찢어지겠다는 속담을 내 심박수에서 떠올릴 수 있었다. 작년 트레일러닝 교육 때에 김지섭 선수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심박수 170 정도에서 달려야겠다고 생각하여 페이스를 늦췄다. 마라톤보다 더 긴 거리를 산으로 달려야 하기 때문에, 초반에 체력을 쏟는 것은 완주를 장담할 수 없는 바였기 때문이다.



폭포는 매우 아름다웠다. 그 이후에는 매우 힘들었지만, 애팔래치아 산맥의 원시림이 나를 반겨주었다. Tray gap이 반환점이었는데, 중간 이후에는 처음 가본 곳이 아니라 길이 익숙했다. 하지만 익숙한 것과 힘듦은 별개의 문제였다! 한참 올라가고 있을 때 선두의 사람들이 먼저 내려오고 있었다. 도대체 얼마나 빨리 올라가기에 벌써 반환점을 통과했을까? 경외감이 들었다. 흰 수염이 성성한 나이 지긋하신 러너분도 내 앞에 있었다. 큰 감명을 받았다. 나도 훗날 이렇게 건강하게 살 수 있을까?

루비 폭포 전 유니코이 파크 댐.




반환점에서는 샌드위치나 바나나와 같은 간단한 간식과 함께 콜라를 나눠주었다. 아틀랜타에 코카콜라 본사가 있는 만큼, 여기 사람들은 콜라를 잘 마시는 것 같다. 콜라를 한 컵 들이키니 온몸이 기쁨의 춤사위를 보였다. 순식간에 피로가 풀렸고, 그 기세로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내리막에는 나중에 올라오는 러너들이 많았다. 나는 계속 큰 응원을 했다. 콩글리시이기는 하지만 한국의 '파이팅'이라는 단어가 미국에 없음에 아쉬웠다. 그래서 나는 박수를 치거나, 거의 다 왔다고 하거나, 정말 잘하고 있다고 얘기를 했다. 나중에는 그 응원 덕에 완주할 수 있었다고 하는 사람들도 뵈었다. 아무튼 얼굴도장은 확실히 찍은 것 같다.


원시림 지대.



내 번호는 140번, 그러나 앞의 166번 선수는 따라잡을 듯 말 듯 매우 빨랐다. 가까워지려고 하면 그새 나의 접근을 눈치채고 속도를 높이셨다. 나중에 일면식을 텄는데 Alena라고 하는 24살 여성이었다. 알레나는 내 앞에서 넘어지고도 바로 다시 일어나 발걸음을 재촉했다. 그 끈기! 닮고 싶었다. 결승점에서 4마일을 앞두고 나는 ARC 멤버들을 만났다. Oscar와 세 친구들은 하프 마라톤 코스에 참여하는 중이었다. 신청을 한 것을 주로에서 처음 알게 되었고, 레이스가 한층 덜 외롭게 되었다. 결승점에서 보자며 나는 발걸음을 재촉했다.

마지막 코스는 채터후치 강에 발을 담그고, 오르막을 다시 오르는 코스였다. 강에 발을 담그는 것은 피로 해소에 매우 좋았지만, 그다음이 문제였다. 신발이 물을 머금어 매우 무거웠기 때문이다! 그래도 레이스가 곧 끝날 것이라는 생각에 계속 달렸다. 트레일 레이스, 산악마라톤은 그야말로 나의 한계를 시험하는 대회라는 것을 몸소 느꼈다. 드디어 결승점에 다다랐고, 나는 풀코스 44km에 4시간 55분으로 87명 중 16등에 골인했다. 1등 선수는 나보다 무려 1시간 일찍 도착해 있었다. 정말 강한 사람들은 한없이 많다는 것을 느꼈다.

대회결과표. 매우 잘 달리는 사람들이 많다!



결승점에서의 분위기는 정말 영화나 해외여행 다큐멘터리에서 보는 풍광 같았다. 클래식, 컨트리 장르로 보이는 음악가들의 야외 연주가 울려 퍼지고, 대회 참여자 및 응원 관객들은 초원에 앉아 대회에서 나눠주는 핫도그와 맥주를 즐기고 있었다. 눈부시게 맑은 하늘은 마음을 평온하게 만들었다. 30여분 뒤 하프코스를 뛰었던 ARC 친구들이 들어왔고, 같이 사진을 찍었다. 친구들은 작년에도 다른 트레일러닝 대회에 참여했다고 하는데, 정말 대회를 즐긴다는 느낌이 들었다.

ARC 친구들과 한컷.



이번 대회를 통해 애팔래치아 산맥을 제대로 느낄 수 있었다. 형성된 지 오래되어 우리나라의 태백산맥과 그 능선의 높낮이가 비슷했지만, 풍광은 사뭇 달랐다. 이렇게 거대한 대자연을 끼고 산다는 것은 미국인들에게 있어 축복 같다고 생각한다. 앞으로도 이런 울창한 수풀이 잘 보존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전체 코스와 페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