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전! 미칠왕/대회 참가기

3월 18일 Atlanta Spartan Trifacta Weekend - Beast 21K 참여기 (스파르탄 레이스)

미칠왕 2023. 3. 19. 23:41

3월 초, 아직 차를 사지도 않았는데, 한국에서 즐겼던 유명 장애물레이스 대회가 종주국에서 집 가까이 열린다는 이야기를 듣고 바로 신청부터 했다. 사실 21k를 장애물레이스로 달리는 것이 처음이었기 때문에 긴장을 하긴 했다. 그런데 막상 달리니 장애물에 도착할 때마다 한숨 돌릴 수 있어서 좋았던 기억이 있다.

아무튼, 나는 대회 준비 '벼락치기' 를 위해 전주에 하프마라톤을 나 혼자 기록했다. 내가 주로 달리는 코스는 업힐도 꽤 있어서 좋은 훈련이 될 수 있었다. 별로 기록을 염두에 두지 않고 달리기는 했는데, 예상 외로 좋은 기록이 나왔다. 1시간 35분을 찍었다! 평지나 약간 내리막길일 때에는 4분 20초대 페이스가 나왔고, 오르막길에도 4분 40초 언저리를 돌았다. 작년 서울레이스를 할때만 하더라도 한시간 44분이라는 기록이 나왔는데, 그때와 비교하면 월등한 차이다.

집주변 하프마라톤. 좋은 점은 웃통을 까고 달려도 된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미국에 와서 여건상 장비를 사용한 웨이트 트레이닝을 하지 못하고, 맨몸운동과 유산소운동을 지속적으로 했어서 이런 결과가 나왔는지도 모른다. 그 다음주에 있을 레이스도 문제 없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새벽에도 종종 달리기를 했다. 아침시간이 업무에 방해되지 않고 좋은 것 같다. 차가 생기면 크로스핏 새벽반을 수강할 생각이다.


레이스 당일, 나는 전날 업무를 마치고 일찍 잠에 들어, 컨디션이 양호했다. 나쁘지 않았다. 시리얼로 밥을 먹고 전날 예약해 놓은 우버를 타고 집을 나섰다. 우버가 일반 택시보다 비싸기는 한 것 같다. 그래도 이제는 우버 탈 일이 별로 없을 것이다. 다음주면 차를 구매하게 될 수 있으니까! 어느정도 이제 미국에서의 생활이 자리를 잡아간다. 아무튼, 나는 40분정도 차를 타고 대회가 열리는 코니어스 1996 Centannial Olympic Pkwy로 향했다. 그런데 도착지점은 사람이 아무도 없는 으슥한 공간이었다. 이상하다고 생각한 기사님이 목적지 주변을 차로 돌아보겠다고 했다. 실제로는 정문이 반대편에 있었는데, 우버의 네비게이션이 방향을 잘못 가르쳐준 것이었다.

공원이 넓었던 탓에 도착지가 다른 곳을 가르키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아무튼, 친절한 기사님 덕분에 나는 대회장 입구로 갈 수 있었다. 일전에 Atlanta run club에서 만나기로 한 친구가 있었는데, 10시에는 도착하지 못할 것 같다고 해서 나 혼자 출발을 해야 했다. 그렇지만 대회장의 열기는 대단했다. 우리나라의 경우 내가 판데믹 중간에 갔기 때문에 그렇게 사람이 많다고 느끼지는 못했지만, 현지 대회는 역시 종주국답게 많은 인파가 함께 했다.

9시 타임 출발팀. 벌써 열기가 상당하다.


특기할 점은 미국에서는 어린이도 참여할 수 있는 대회가 열린다는 것이다. 노인분들도 많이 참여했다. 내가 미국에 온 이유 중 하나도 이렇게 다양한 사람들이 스포츠 및 피트니스 문화를 즐길 수 있다는 것을 실감하고 싶어서인데, 이렇게 실제로 보니 정말 신기했다. 심지어 휠체어를 타고 경기에 참여하는 사람도 있었다. 뒤의 코스를 생각하면 혀를 내두를 도전정신이었다.

날씨는 맑았지만 전날 비 때문인지 매우 추웠다. 아침에 사람들은 입김을 내뿜으며 대회 준비운동에 여념이 없었다. 스파르탄 레이스는 16개에서 최대 30개의 장애물 코스가 있는 종합 장애물달리기였다. 5k 스프린트의 경우 산을 뛰는 경우가 그리 많지는 않지만, 내가 참여하는 21k의 경우 거의 트레일러닝대회라고 할 정도로 산을 매우 오래 탔다. 작년 8월 말에 있었던 트레일러닝 대회가 생각났다. 그때 기록이 2시간 반이었는데, 생각해보면 장애물을 추가할 경우 30여분의 시간이 더 소요된다고 볼 수 있겠다.

대회 시작 전에 너무 추워서 어디 열을 올릴데가 없나 하고 두리번거렸다. 그랬더니 눈에 띈 것이 'Marine'이 크게 적혀진 지프차와 과 함께 턱걸이 봉이 보였다. 그래서 나는 그 부스에 있는 사람들에게 턱걸이를 해도 되냐고 물어봤다. 몇개 안했는데 미 해병대 티셔츠와 가방을 주셨다. 알고보니 턱걸이 챌린지 이벤트였던 것이다. 나는 짐을 맡겨야 했는데 때마침 잘되었다고 생각했다.

즉석 턱걸이 챌린지.

티셔츠와 가방을 받았다!



어찌되었든, 나는 10시에서 10분을 남기고 출발선에 자리를 잡았다. 출발지점부터 포복으로 가시 철이 아래에 있는 진창을 지나야 했는데, 그때부터 뽀송한 발로 러닝을 즐길 수 없겠다는 생각을 했다. 내 러닝 베스트가 자꾸 철망에 걸렸는데, 감사하게도 뒤의 사람이 풀어주었다. 나는 출발점에서 사회자의 말에 귀를 기울이며, 워터스테이션이 10군데가 있으며 스테이션 5에서 자신들의 물통을 채울 수 있다고 설명해 주신 것을 들었다.


스파르탄 레이스 단골 구호 - Aroo Aroo Aroo!



나는 워터스테이션이 매우 많아 굳이 물주머니를 챙기지 않아도 되겠다고 판단하여 그냥 에너지젤만 챙겼다. 그리고 혹시라도 있을 추위를 방지하기 위해 바람막이도 챙겼지만 그것은 기우였다. 계속 움직였고, 바람이 잘 불지 않았기 때문에 그리 춥지 않았기 때문이다. 출발 신호에 맟추어 출발했다. 스파르탄레이스는 그룹별로 시간을 다르게 편성하여 순차적으로 출발시키게끔 한다. 그렇기 때문에 추월할 사람이 매우 많았다. 또 그런 맛도 있었다.

우리 그룹에서 10분정도 달리니, 4명으로 선두가 추려졌다. 그 중 한명에게 말을 걸었는데, 그 사람도 이번 21k가 처음이라는 것이다. "레이스를 즐기자고" 하면서 주먹을 맞댔다. 전혀 모르는 사람과도 친구처럼 대하니 좋은 문화 같았다. 그 사람은 나보다 키가 적어도 15cm는 커 보였다. 그래서인지 벽을 타고 넘어가야 하는 장애물의 경우 정말 빠른 속도로 돌파했다. 폐활량도 남달랐다. 나는 그 사람을 10km정도까지 따라가다가, 진창을 만난 이후로 놓치게 되었다.

처음에는 무난하게 가슴높이의 벽을 넘는 것이었는데, 점점 그 벽의 난도가 높아져 내 키의 1.5배까지 넘어야 했다. 다양한 장애물을 극복하는 것 또한 스파르탄 레이스의 묘미인 듯 하다.
내가 제일 힘들어 한 장애물은 몸을 써서 힘든 것이 아닌 온몸이 진흙 범벅이 되어야만 하는 구간을 통과해야 했을 때이다. 사람들이 주저하며 자신의 짐을 옆에 두고 철조망 아래에 있는 진흙 웅덩이를 맨몸으로 지나가는 것을 보고, 이 대회는 "진짜다" 라는 생각을 했다. 한국에서는 그렇게 심한 진창은 없었던 것 같은데, 이번에는 정말 진창의 진수를 몸으로 체험했다.

진흙 구간. 버피로 스킵이 안되는 구간이라 모두가 들어갔다!

진흙 풀장을 극복하고.



신발에는 진흙이 흥건했고 그때문에 달릴때 질벅거리며 몸이 무거워졌다. 그래도 이내 산속을 달리니 진흙이 금방 말라 적응이 되었다. 이 외에도 인위적으로 만들어놓은 것 같지 않은 자연 진창도 있었는데, 신발이 조금 마르려고 하면 그런 구간이 나와 힘듦이 가중되었던 것 같다. 그 와중에도 먼저 진창구간을 극복한 사람이 다음에 오는 사람들에게 손을 내밀어 도움을 준 것도 잊을 수 없는 대목이다.


반면 내가 제일 좋아하는 장애물은 구름다리와 외줄오르기였다. 구름다리는 일반적인 것이 아닌, 철봉이 유동적으로 움직이거나 불규칙적으로 잡는 곳이 있는 구간이 대다수였다. 나는 그래도 클라이밍을 종종 해왔기 때문에 메달리기는 자신이 있었다. 이때 레이스를 하면서 드는 생각은, 정적인 '쇠질' 말고도 즐길 수 있는 역동적인 동작들이 많다는 것이었다.

외줄타기, 군시절 추억이 떠오른다.



그런데 레이스는 내 시계가 21k지점에 도달했다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이어졌다. 여기서는 마일 단위를 쓰기 때문에 km의 정확성과는 거리가 있었다. 23k정도에 실제로 골인지점이 있었다. 골인지점 인근에는 제법 높은 장애물이 있었기 때문에 최대한 조심해서 전진했다. 마지막 하이라이트인 불타는 장작을 넘으며 레이스는 종료되었다. 한국에서는 그냥 숯정도였는데, 이번에는 정말 활활 타오르는 장작이었다! 주변에 자갈도 있어서 구르기는 못했지만, 그래도 멋지게 점프했다.

피니시라인 부근에 있는 장애물, 높이가 꽤 된다!

해당 대회 기록. 진창과 장애물, 그리고 산길이 많은 것 치곤 잘했다고 생각한다!


끝나고 나는 달리고 난 후 주는 음료와 바나나를 챙기고 로고 앞에서 사진을 찍혔다. 나중에 잘 나온 사진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짐을 챙기고 근처 푸드트럭에서 밥을 먹기로 했다. 치킨텐더와 감자튀김을 사 먹었는데 갓튀겨서 그런지 정말 맛있었다. 나는 튀김을 그달리 좋아하지는 않는데, 여기서는 정말 맛있게 먹었다!

치킨 텐더 튀김과 프렌치프라이. 시장이 반찬이다.

메달과 함께 기념사진


이번에는 비록 혼자 출발해서 혼자 끝낸 경기였지만, 이번 기회는 그 어느때보다도 미국의 피트니스 문화를 만끽할 수 있었기 때문에 상당히 의미있다고 본다. 돌아오는 우버에서 레이스를 곱씹으며, 다음에는 팀과 함께 달릴 생각을 했다. 아틀랜타 러닝 클럽에서 매주 정기적으로 달리기를 한다고 하니, 달리기도 할 겸 외국 친구들을 많이 사귀는 것이 목표다. 다음주부터는 슬슬 어딜 돌아다닐 수도 있으니, 그때 내가 할 일을 구체화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