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6 주간일기(생일, 차 구매, 헬스장)
월요일, 화요일은 사수님 출장 관계로 사무실에서 혼자 근무했는데 정말로 별일 없었다! 괜히 쫀 것 같다. 긴장만 하지 않는다면 실수할 일은 적고, 예기치 못한 변수가 생긴다고 하더라도 대처 가능한 일들이 많았으니 나는 만족한다. 더불어 이 이틀간을 계기로 일에 자신감이 붙었다. 아직 많이 부족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한 달 전 아무것도 모를 때보다는 많이 진척되었다고 스스로 평가한다.

수요일은 내 생일이었다. 예상치 못하게 주변에서 과분한 축하를 받았다. 축하해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의 인사를 올리고 싶다. 직장에서는 한국인 선배분들만 알 뿐 다른 인원들은 모르는 눈치였다. 나는 생일에 그렇게 의미부여를 하는 것이 아니지만, 오프라인으로 한국에 있는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불가능한 지금 생일축하를 받는 겸 안부인사를 건네는 것이 어느 때보다 소중해짐을 느꼈다.
나는 수요일 이후 본격적으로 중고차 매물을 골랐다. 지금까지는 사수님 출퇴근 차량에 카풀하였지만, 언제까지 차를 빌려 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장을 볼 때도, 심지어 헬스장을 갈 때에도 차는 무조건 필요했다. 애틀란타를 조금 벗어난 지역의 경우 정말 공간이 널찍널찍하기 때문에, 차가 없다는 것은 곧 걸을 다리가 없음을 의미하는 것과 같다는 말이 실감되었다.
아무튼, 매물을 보던 중 좋은 차량이 눈에 들어왔다. 포드사의 한 SUV였는데 외관상 매우 좋아 보인다고 생각하여 주말에 중고차를 볼 때 0순위 후보로 골랐다. 이것 말고도 나는 SUV, 그리고 오프로드에 대한 나름의 환상이 있다. 사막이나 산악지형을 거침없이 질주하는 SUV, 오프로더를 볼 때 내 심장이 두근거렸다. 울퉁불퉁한 지형과 빗물 고인 주로를 무리 없이 통과해 내는 차야말로 내가 타고 싶은 차 그 자체 같았다. 그래서 JEEP 사 차량에 눈독을 들이기도 했다. 물론 인턴인 나의 경우 주머니사정으로 가장 합리적인 가격에 해당 차량을 골라야 했으니 선택권은 한정적으로 될 수밖에 없었다. 우리나라에는 정발 된 적이 없다고 여겨지는 패트리어트 기종이 적절한 가격에 형성되어, 그것 또한 보러 가기로 했다. 덤으로 한인촌 주변에 있는 같은 포드사의 세단 또한 주말에 보기로 계획했다.
나는 사수님의 호의로 어제 토요일에 둘루쓰라는 한인촌에 가면서, 한인마트에서 장도 볼 겸 중고차 매물을 보기로 했다. 먼저 첫 번째 행선지는 내 급여계좌를 튼 뱅크오브 아메리카였다. 뱅크오브아메리카에서는 ATM인출한도가 800달러가 최대였기 때문에, 직접 은행원으로부터 출금을 요청해야 했다. 나는 토요일에 해당 지점이 여는지 알아본 뒤, 현금을 인출받았다. 놀라웠던 점은 관공서 등에 갈 때마다 각종 서류를 요구해야 했던 외국인인 내가, 운전면허증을 제시하자 별 확인과정을 거치지 않고 행정처리, 은행처리가 이루어졌다는 점이다. 미국에서 사실상의 주민등록증 역할을 하는 것이 운전면허증이라고 하는 말의 이유를 알았다.
그리고 둘루쓰 중간 기착점에 있는 코니어스로 향했다. 코니어스는 저번 주말 스파르탄레이스 경기를 치렀던 곳이다. 집에서 12마일 정도 떨어진 곳이다. 코니어스 중고차 딜러십에 도착하니 뜻밖에도 내가 외국인이고 파이낸스 즉, 할부로 계산하지 않고 현금만으로 계산할 것이라는 이유로 다른 딜러십을 추천 했다. 나는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사수님이 각 딜러십마다 특정 은행사로부터 스폰을 받으며, 그렇기 때문에 캐시로 잘 거래하지 않는 곳이라는 설명을 들었다. 내가 사전에 찾아본 사이트의 내용과는 달리 마침 해당 차량이 팔렸고, 내 0순위 차량도 아니었기 때문에 미련 없이 다른 행선지로 향했다.
다음 행선지는 한인촌인 둘루쓰 내에 있는, 멕시코계인지 스페인어를 쓰는 히스패닉이 운영하는 딜러십이었다. 도착하니 키가 작지만 인상이 푸짐한 아저씨가 에스파뇰과 영어를 섞어 쓰며 알듯 모를 듯 설명을 해 주셨다. 뜻은 대충 '이 가격에 이렇게 상태 좋은 차는 없다' 정도로 해석할 수 있었다. 물론 실제로도 그러했다. 중고차를 보러 가기 전날 소개 유튜브를 봤는데, 후방카메라만 없을 뿐 블루투스 스피커도 있고, 있을 건 다 있었다. 나는 곧장 시승을 했다. 사실 이 이전 평일에 집 주면 딜러십에서 현대 엘란트라 (아반떼) 시승을 한 적이 있는데, 그때는 내가 보험이 없다고 하여 운전면허증 확인 이후에도 딜러 아주머니가 직접 탑승하여 내 시승을 지켜봤었다.
그러나 이 스페인 아저씨들은 뭔가 허술했다. 최소한 운전면허라도 확인해야 하는데, 그냥 타고 오라는 것이다. 나도 처음에는 미처 이 사실을 인지하고 못했다가, 딜러십을 나서자 알게 되었다. 차는 외관도 그렇고, 운전 시에도 이상이 없었다. 다만 엑셀레이터를 밟을 때 가끔 '쿵' 소리를 내고 무엇인가 살짝 부딪힌 듯이 차체가 약간 유동이 있었으나, 이후 다시 운전했을 때에는 이상이 없는 것으로 보아 이는 새로운 차를 몰 때 익숙하지 않은 내 탓으로 잠정 결론지었다.

다음은 한인 타워로 향했다. 이민법 전문 변호사부터 시작해서 짬뽕집, 장수돌침대까지 뭔가 한국의 휴게소 같으면서도 주상복합단지로 구성된 2층짜리 건물집단이 세워져 있었다. 일반 한국의 고속도로 휴게소보다는 크고 아웃렛보다는 작은, 그런 형태였다. 미국은 땅덩어리가 워낙에 넓고 내가 사는 지역은 산이 없어서, 땅을 정말 널찍널찍하게 사용하는 것 같았다. 내 고향인 태백 시내 도로길의 경우 왕복 2차선으로 매우 협소했으나, 여기는 중앙선이 그냥 선이 아니고 좌, 우회전차량이 현하게 정차했다가 돌릴 수 있게끔 중앙 차선이 따로 있었다. 거기서 주행을 할 수는 없지만, 다른 차량의 편의를 고려한다는 점에서 미국은 정말 운전하기 좋은 여건에 있음을 체감했다.
아무튼, 나는 점심으로 순두부를 먹었다. 맵기도 조절할 수 있다고 해서 최대한 밉게 부탁드렸다. 땀을 뻘뻘 흘리면서 먹었는데 매우 맛있었다. 순두부집에서는 순두부뿐만 아니라 갈비, 고등어구이, 곱창 등등 갖가지 메뉴를 팔았다. 그래도 맛있었고, 무엇보다도 한 달 만에 먹어보는 한국'요리'이었기 때문에 살짝 감동했다. 나는 아직 계산 시 팁을 적고 사인하는 문화에 익숙하지 않았는데, 주인아저씨가 미국에 와서 축하하고 잘 적응하기 바란다고 하셨다.
밥을 먹고 더 위쪽에 있는 마지막 행선지 딜러샵으로 향했다. 보려는 기종은 포드사의 포커스, 세단 기종이었다. 역시 외관상 깨끗했다. 첫 번째 본 에지는 파란데, 이번 건 빨갰다. 그런데 가까이서보고, 시동을 켜려고 보니 '영 아니올시다'였다. 우선 오른쪽 뒷바퀴에 쇠못이 박혀있었다. 지렁이라고 하여 덧대는 것을 끼우면 되었지만, 우선 거기서부터 살짝 그랬다. 두 번째로 블루투스 기능이 없고 라디오가 작동이 되지 않았으며 라디오 조작판이 무슨 이상한 선에 연결되어 게임보이 조이스틱처럼 나와있었다. 그리고 SUV에서 세단을 모니 차체가 낮아 그리 안정적이라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나는 이미 마음을 정했다.
다시 둘루쓰의 딜러십으로 가서 차에 대한 견적을 요청했다. 그런데 건물 내부로 들어가니 수상한 냄새가 물씬 풍겨왔다. 처음에는 쑥을 태우는 냄새인 줄 알았다. 머리가 아팠다. 딜러 중 한 명은 눈이 조금 풀려있었다. 나는 서류처리가 될 동안 최대한 건물 밖으로 나가 있었다. 뭐, 나는 매물만 좋으면 구매하고 빨리 자리를 뜨면 될 심산이었다. 한국에서 중고차 구매경험이 없어서인지는 모르겠으나, 미국 딜러십은 사이트에 기재된 그대로의 금액을 받지 않는다. 자동차세와 딜러십 수수료 등등이 포함되어 평균적으로 차량 제시가의 500~600불이 더 추가된다. 내가 간 딜러십도 그렇게 말했다. 5900에서 6600으로 뛰었다. 그런데 흥정이라도 해 보자고 하여 나는 시승 시 워셔액 분사구 중 왼쪽이 작동이 안 되고, 엔진오일을 교체해야 한다고 트집을 잡았다. 그랬더니 6500으로, 곧 6400으로 낮춰졌다.

그리고 사수님이 내가 외국에서 일하러 온 사람인데 사회초년생이라 돈이 없다는 전략으로 200을 더 깎아주셨다. 다행히 나는 예상한 최대 금액인 6600불에서 400불을 낮춘 6200불에 차량을 구매할 수 있었다. 그래서 다음 달 방세와 보험금을 무리 없이 납부할 수 있게 되었다. 보험금은, 내 한국에서의 운전경력과는 별개로 아예 제로베이스에서 시작했기 때문에, 매우 비쌌다. 보통 한국에서 넘어온 인턴은 달에 최소 270 정도는 보험료로 나간다고 보면 된다. 매우 비쌌지만, 차를 사게 되면 조지아주에서는 차량 보험에 가입하는 것이 법적으로 의무사항이기 때문에, 법정에 서지 않기 위해서는 필수적으로 가입해야 했고, 울며 겨자 먹기로 나는 그나마 저렴한 가격을 제시하는 보험사에 가입했다.
세금을 공제하고 나면 내가 받는 금액은 그리 많지는 않다. 러프하게 잡아 달에 기본급 2400으로 잡는다고 하면, 집세로 650, 보험료로 300, 한 달 식비로 500, 그리고 주유비 등을 포함해 최소 1500은 그냥 나간다. 나머지 900여 불은 저축에 쓰거나 주말에 있을 '나의 도전'을 위해 쓸 것이다. 사실 나는 돈을 모을 것을 기대하고 여기에 온 것이 아니다. 젊었을 때 양질의 경험을 최대한으로 하고 오자는 것이 1차 목표였다. 그리고 나는 이 결정을 후회하지 않는다. 다음 주에는 어떤 즐거운 일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보험을 등록하고 점심을 집에서 먹은 뒤 헬스장을 찾아 전전했다. 일요일에도 여는 헬스장으로 가려했으나 비회원 1일 이용 금지규정이 있어서 다른 곳으로 행선지를 옮겼다. 상당히 싼 가격에 헬스장을 여는 곳도 있었는데, 플래닛 피트니스였다. 다 좋았다. 클라이오세러피나 심지어 태닝기계도 있었다! 달에 25달러면 다 사용할 수 있다고 해서 너무 설렜지만, '파워랙'이 없다는 말을 듣고 바로 나갔다. 어떻게 파워랙 없이 헬스장을 운영할 생각을 했을까? 매우 큰 규모에 비해 어이가 없었다.

그래서 집에서 조금 거리가 있더라도 파워랙이 있는 곳으로 가자는 목적으로 LA피트니스를 갔다. 스쿼시, 배드민턴, 스피닝 등 가지각색의 운동기구들이 있는 것은 플래닛 피트니스와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나는 역시 파워랙이 있는지가 가장 중요했다. 여기는 파워랙도 있고 스쿼트랙도 여러 개 있었다. 달에 49불이었지만 바로 결제했다. 과장을 조금 더 보태자면 나에게 있어 운동이란 숨 쉬는 것과 같기 때문에, 나는 이런 것에 망설임이 없다. 이 정도 금액이면 옛날 건대에서 다닌 제이피트와 금액이 비슷했다.
한 달 만에 '쇠질'을 했다. 스쾃를 했더니 너무 맛있어서 전 종목을 고루고루 맛봤다. 이 느낌, 오래간만이었다. 맨몸운동을 채울 수 없는 묵직한 감각이 나를 즐겁게 했다. 여기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바로 들었다. 집으로 오는 길에는 트와이스 노래를 들었다. 차량 스피커 음질이 마음에 든다. 지금까지는 무리 없이 매우 잘 살고 있다.
27일 월요일부터는 본격적으로 운동 커뮤니티에 가입하려고 한다. 나는 2주 전에 먼저 아틀랜타 런 클럽 디스코드에 가입했다. 내일은 퇴근 후에 아틀랜타까지 가서 정규런에 참여하려고 한다. 어떤 사람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